잔인함 (2003.9.14)

칼럼 2008/08/29 22:46


이야기 하나: 발바닥의 중심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용천(龍泉)이라고 한다. 이곳에 침을 놓으면 아무리 참을성이 많은 사람도 발작을 한다고 한다. 똑같이 침을 놓는데 다른 부분은 괜찮은데 어느 부분은 너무 아파서 괴로움을 느끼는 곳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곳 용천에도 침을 놓는데 왜 이곳에 침을 놓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자주 시침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너무 아프기 때문일까?

이야기 둘: 연못에 개구리가 놀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린아이가 무심히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었다. 던진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이 한 일인데 정작 개구리는 죽임을 당한다. 아무 생각없는 돌팔매질에........  그런데 그 죽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그 다음에는 쾌감을 느끼면서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야누스라는 말이 있다. 희랍 신화에서 비롯된 말인데,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양면성에 대하여 일컫는 말인데 영어에서 정월을 일컫는 제뉴어리가 바로 야누스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양면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얼른 보면 괜찮아 보이는 사람도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깊은 고통과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가하면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 안스러운 마음을 갖는가 하면 그 고통을 보면서 묘한 쾌감을 갖는 것이 또 인간이기도 하다. 인간이 극도로 잔인해 질 수 있는 이유인데,  인간이 갖고 있는 양면성이다.

잔인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잔인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왜 생기는 것일까? 첫 번 이야기는 잔인함이 치료에 사용되는 예이다. 이 경우는 본인도 원인을 알고 있고 치료자도 그 원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서 고통을 서로 수납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고통이 사람을 치료하게 된다. 문제는 두 번째인데 본인이 잔인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제일 무섭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의 가장 아픈 곳을 연속적으로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처음 몇번은 참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정작 돌을 던진 사람은 그까짓 일에 성질을 낸다고 또 삐죽거린다. 대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초점을 찾지 못하게 된다. 돌을 던지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를 인식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드러나지 않은 고통이 상처가 되어 잠복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상처가 건드려지면 내면에 잠복해 있던 분노가 순식간에 폭발을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평소에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도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평정을 잃게 된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생각없이 던지는 말들에 그 사람이 상처받고 있는지의 여부를 세밀히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첫 번 출발이다. (Sep. 14.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