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늘 난이 있다. 지금뿐 아니라 아마 미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거의 사무실에 난이 떨어져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잘 죽어서 내가 혹시 난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한번은 정말 열심히 난을 키워 본다고 매일 정성을 들여 물을 주고 했는데도 죽어버려서 그 후에는 물을 주는 것도 겁이 나서 손을 대지 못한다.
화초를 제대로 가꿔 보지 않은 나는 그 즐거움을 잘 모른다. 사람들이 화초를 쓰다듬고 닦아주고 물을 주는 정성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정성을 들일까? 아마도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갖는 기쁨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생명이 자라고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인간에 대해서나 식물에 대해서나 그 감정은 같을 것이다.
젊었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하고 나 자신을 더듬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더듬의 결론을 잘 지켜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나는 젊었을 때 너무 말이 빨라서 어머니에게 늘 주의를 듣곤 했다. 보고 들은 느낌을 맘 속으로 담고 있기보다는 직설적으로 뱉어 버리는 것 때문에 사람들의 맘을 상하게 하는 실수를 많이 하곤 했다. 그런 경력이 있는 까닭에 나는 늘 나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을 신중히 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느낌을 쉽게 내뱉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판단이나 평가보다는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내가 볼 때에 저 사람의 생각은 이런데 지나고 보니 저렇게 변하고 있구나 혹은 저 사람은 저 부분이 부족해 보이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부족함이 채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어버이의 심정을 가지고......
참 세상을 자기식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또 다른 안목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기쁘고 즐겁다.
판단하기는 쉬우나 생명을 불어넣기는 어려운 일이다.
학교 운영을 하면서 정말 피곤해서 손을 놓고 싶은 때도 있는데...
변화되는 학생들을 보는 기쁨이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2011.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