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좋아하는 노래들이 있다. 그런데 좋아한다는 것과 잘 부르는 것과는 차이가 약간 있다. 좋아는 하지만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수들이 무대에 나와서 부르는 노래는 자신들의 히트곡을 주로 부르지만 정작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자신의 노래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트롯트 가수가 정작 좋아하는 노래는 발라드 계통의 노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노래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의 장래도 엿볼 수가 있다. 일제 시대 때 사의 찬미를 불러서 유명한 윤심덕이란 가수는 현해탄을 건너던 배에서 투신 자살을 했고 이별을 노래하던 가수들은 이혼해서 사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산장의 여인을 불러서 유명한 가수는 홀로 고독하게 산장 같은 곳에서 고독하게 사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송대관이란 가수는 쨍하고 볕들날 돌아온단다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로 그 인생이 쨍하고 볕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 시대에 가장 심금을 울린 가수는 김정호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노래를 부르면서 암울했던 군사독재의 시대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이 사람의 노래는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이런 쓸쓸한 구석이 있었는가 생각해 볼 정도로 우리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 사람은 30이 넘자마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는 잘 부르는데 여럿이 부를 때는 입을 다물고 있거나 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너무 개성이 강한 탓인지는 몰라도 함께 누려야 할 감정 이입(移入)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다. 함께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단체생활도 늘 자기 중심적이다. 본인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제일 의견의 일치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음악과 교수들이고 학생들이다. 자신의 음악세계와 틀리면 그대로 손을 놔 버리고 협력을 하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화음을 내야 할 사람들이 실제에 있어서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 목사가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이 성가대의 지휘자인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회는 예수님 노래를 부르는 곳이다. 신자의 삶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은혜를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그렇게 신나던 사람들이 찬송을 부르자고 하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된다. 왜 그럴까?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신앙고백이 없기 때문이다. 신앙고백이 없으면 노래가 되지 않는 법이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순전하게 찬송을 불러보자.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음악세계를 의식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며 즐거운 찬송을 하자. 우리의 삶이 변화된다.
"나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몸..........."